이인복 (13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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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인복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포의 아들이다. 주자학에 밝았으며, 1326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금주판관을 지냈고, 공민왕 때 조일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다. 정당문학, 참지중서정사 등을 역임하고 찬성사에 올라 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신돈에게 반대하여 퇴직 후 검교시중에 이르러 사망했으며, 고금록, 금경록, 초은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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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복 (1308년) | |
---|---|
기본 정보 | |
휘 | 이인복(李仁復) |
자 | 자안(子安) |
호 | 가정(稼亭) |
시호 | 문정(文靖) |
본관 | 경주 이씨 |
생애 | |
출생 | 1308년 |
사망 | 1374년 |
묘소 |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삼승리 |
관력 | |
주요 관직 | 문하시중 수문하시중 판삼사사 첨의정승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이조년(李兆年) |
어머니 | 정부인 안동 권씨 |
배우자 | 정경부인 청주 한씨 |
아들 | 이백령(李百齡) 이천령(李千齡) 이만령(李萬齡) |
딸 | 이씨, 조반의 처 |
2. 생애
이장경의 후손으로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포의 아들이다. 백이정(白頤正)에게 배워 문장에 능하였고,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다.[1]
1326년(충숙왕 3년) 19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복주(福州)의 사록이 되었다가 춘추공봉(春秋供奉)에 보직되었다. 충혜왕 때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대령로 금주판관(大寧路錦州判官) 벼슬을 받고 기거주(起居注)로 승진하였다. 충목왕 때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우대언(右代言)을 거쳐 밀직제학을 지내고 서연(書筵)에서 진강하였다.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승진하여 원나라 정동행성도사(征東行省都事) 벼슬을 받았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이 난을 일으키자 왕에게 법에 따라 처치할 것을 주장하여 그대로 실행하여 죽였다. 정당문학으로 감찰대를 겸하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으며, 참지중서정사(參知中書政使)·판개성부사 첨의평리(判開城府事僉議評理)를 역임하고 찬성사에 나가 공신의 호를 받았다.
1364년(공민왕 13년) 최유의 난이 평정된 뒤 10월 21일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의 복위를 하례하였다.[1]
신돈에게 거슬려 퇴직하고 안흥부원군에 봉해졌고, 다시 판삼사사(判三司使)가 되었다가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러 등창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고금록, 금경록, 초은집이 있다.
2. 1. 가계와 초기 생애
李仁復|이인복중국어은 이장경의 후손으로,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포의 아들이다. 이포의 아들은 이인복, 이인임, 이인미, 이인립, 이인달, 이인민이다. 이인임은 이인복의 동생이자 이인미의 형으로, 고려 멸망 후 은거한 이숭인의 5촌 당숙이기도 하다. 이인임, 이인립의 형이면서 이성계의 사위가 된 이제의 큰아버지이다. 백이정에게 배워 문장에 능하였고, 특히 주자학에 밝았다.[1]- 증조부 : 이장경
- 조부 : 성산군 이조년(1269~1343)
- 아버지 : 이포(시호는 경원공)
- 어머니 : 경주군부인 경주 설씨(慶州君夫人 慶州薛氏)
- 동생 : 이인임 - 공민왕 사후 횡포를 부리다가 최영, 이성계에게 숙청당했다.
- 동생 : 이인민(1330~1393)
- 동생 : 이인립
- 조카 : 이제(1365~1398)
- 당조카 : 이숭인(1347~1392)
2. 2. 관직 생활
이인복은 농서군공 이장경의 후손으로, 이조년의 손자이자 이포의 아들이다. 송대 유학(宋代儒學)의 태두인 백이정(白頤正)에게 배워 문장에 능하였고, 특히 주자학(朱子學)에 밝았다.1326년(충숙왕 3년) 19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복주(福州)의 사록이 되었다가 춘추공봉(春秋供奉)에 보직되었다. 충혜왕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대령로 금주판관(大寧路錦州判官) 벼슬을 받아가지고 돌아와 기거주(起居注)에 승진하였다. 충목왕 때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우대언(右代言)을 거쳐 밀직제학에 나가 서연(書筵)에서 진강하였다.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승진하여 원나라 정동행성도사(征東行省都事) 벼슬을 받았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이 난을 일으키자 왕에게 법에 따라 처치할 것을 주장하여 그대로 실행하여 죽였다. 정당문학으로 감찰대를 겸하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으며, 참지중서정사(參知中書政使)·판개성부사 첨의평리(判開城府事僉議評理)를 역임하고 찬성사에 나가 공신의 호를 받았다.
최유의 난이 평정된 뒤인 1364년(공민왕 13년) 10월 21일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공민왕의 복위를 하례하였다.[1]
신돈에게 거슬려 퇴직하고 안흥부원군에 봉해졌고, 다시 판삼사사(判三司使)가 되었다가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러 등창으로 사망했다.
2. 3. 성품과 일화
성품이 강직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공민왕에게 신돈의 사람됨이 단정치 못하여 후일에 반드시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왕이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였다. 또한, 그의 아우 이인민과 이인임에게 나라와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 되었다.3. 저서
4. 가족 관계
- 증조부: 이장경
- 조부: 성산군 이조년 (1269년 ~ 1343년)
- 아버지: 이포 (시호는 경원공)
- 어머니: 경주군부인 경주 설씨
- 동생: 이인임 - 공민왕 사후 횡포를 부리다가 최영, 이성계에게 숙청당했다.
- 동생: 이인민 (1330년 ~ 1393년)
- 동생: 이인립
- 조카: 이제 (1365년 ~ 1398년)
- 당조카: 이숭인 (1347년 ~ 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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